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다
23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24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25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 들아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27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째는 예수님이 왜 두려워하느냐 말씀하셨다. 두려움은 무엇이고 왜 두려움을 꾸짖으신지
둘째 예수님의 제자들이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어찌하여 이분이 바다도 잠잠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가 믿고 생각하는 분량에 갇혀있다. 믿음은 우리 생각의 범주를 뛰어넘는 것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예전보다 과학,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편리함은 더해가지만 위험요소는 더욱 많아졌다. 예전에 비해 너무나 많이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 하루 평균 교통사고로 33명이 사망한다.
위험한 세상이 되었다. 빠르게 세계를 날아다니는 비행기 추락 사고,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을 병들고 죽게 하는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출현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3년여를 보냈다. 부작용도 심각할 지경이다. 위험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세상이다.
갈릴리 바다의 풍랑이 심했다. 실제로 배를 타고 파도를 만난 이들은 깊이를 알 수 없고 무게를 측량하기 어려운 시퍼런 파도에 위압감, 공포,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파도치는 바다가 아닐지라도 바다는 무서운 곳이다.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곳이 바다이다. 두려움, 공포는 실제가 있어서인가? 때로는 사람도 무섭다. 모르는 밤길을 갈데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묻지마 폭행이 너무 많아졌다. 미국에서는 범인 잡는 로봇이 나타났다. 세상은 위험한 요소들이 너무나 많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임재 속, 주님의 만지심, 깊은 교제 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장애물은 두려움이다. 교회, 가정 무서움이 어디서나 존재한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무서움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무섭고 두려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매일 자던 침대, 안방인데도 무서워하는 이가 있다. 왜 그런 걸까? 말라가고 쇠약해지고 삶의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무서움의 정체가 무엇인가?
요즘 장례문화 특히,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깨끗하고 정결하다. 예전에는 집안에 3일간 비닐 깔고 시신을 두었다. 내 가족이지만 시신이 된 순간은 무섭다. 죽음은 싸늘하고 무서움을 느끼게 한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 무서움을 심어준다. 영적으로 무서움과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극복하는데 있어서 덩치의 크고 작음이 아니다. 사람의 나이와 성별도 상관없이 무서움의 영이 있다. 크리스챤이 아닌 분은 죽을 때 무섭고 두려워서 발악하며 몸이 빳빳해진다. 장례 많이 치른 사람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주님 믿고 천사가 데리러 온 사람들은 평온하고 몸도 시간이 가면 굳지만 몸이 야들야들하고 편안하다.
돌아가실 때 편안한 얼굴, 영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된 것이다. 목사님들 주일설교를 위해 긴장하고 목마르고 한다. 성당의 신부님들도 긴장이 된다고 한다. 토요일에 술집에 가는 신부님들이 있다고 한다. 아무도 신부님을 비난하지 않는다. 신부님들처럼 개신교 목사가 생활한다면 교회 망한다. 기도하여 두려움, 무서움을 극복해야 한다. 싸우면 어느 순간에 극복하게 된다.
두려움과 무서움은 그의 영이 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하는 것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발걸음 내딛는 것, 가보는 것, 다스리는 것 그것을 못하게 하는 첫 번째 장애가 두려움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은 불신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울왕과 그의 병사들이 골리앗이 협박할 때 사울왕과 그의 병사들은 골리앗이 무서워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능력 있고 없고 떠나서 두려움은 패자 되게 하는 원인이다. 무서우면 손발이 굳어버린다. 격투기선수들은 상대방 펀치 강도를 느끼고 두려움을 갖게 되버리면 백전백패한다. 따라서 실적같은 많은 훈련은 두려움을 털기 위함이다.

다윗은 방패도 없고 군인도 아니고 아무것도 없다. 사울왕과 그 정예 병사는 두려움에 몸을 피했지만 다윗은 골리앗 앞에 당당히 섰다. 이유는 무서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의 문제가 아닌 영의 문제이다. 두려움의 영이 내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변화가 와야 한다. 아멘.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한다. 변해야 한다. 도전과 정복은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 불가능을 해결한다. 두려움이 오면 멈추게 된다. 이 생각 하나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성경곳곳에 쓰여있다.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하나님 믿음대로 역사하신다.
사무엘상 17장 45절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 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게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살아가야 할 세상은 거칠고 험한 파도가 온다. 세상사람들은 맹수처럼 다가온다. 그들을 두려워 말자. 화려한 창, 무장된 갑옷이 있을지언정 나는 비록 맨몸일지언정 그들은 그것이 끝이고 우리에게는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비대칭무기 하나님이 임재하심이 있다. 다윗은 그것을 믿은 것이다. 그가 맹수와 싸울 때 함께 하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환경이라도 하나님 나와 함께 있으시다는 확신을 가졌기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로버트 슐러 박사 사람에게는 잠재의식이 있다. 믿음과 영의 영역이다. 보통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잠재의식의 10%도 쓰지 못하고 죽는다. 믿음만이 나를 깨우고 의식, 용기를 깨운다. 같은 사람이라도 주님믿음은 어두움, 연약함을 벗어나게 해 주신다.
태평양, 대서양 크고 넓은 바다 건널 때 가다 보면 바람, 파도, 태풍 만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기나긴 여정이다. 긴 길을 가다 보면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일, 저런 일, 봄햇살, 눈보라 상처, 두려움, 힘듬, 싫음 등에 주저앉으면 인생길 끝까지 가기 어렵다. 우리에게 마지막 종착역은 죽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르신 부르신 사명감이다. 끝까지 사명감을 지고 가는 것이다.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끝까지 가는 것이다. 두려움 속에는 갈 수 없다.
다윗이 잘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고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를 두려워하지 말아라.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귀의 의도는 너를 주저앉히는 것이다. 미래를 개척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영혼 없는 찬양하지 말아라. 주님 안에 있으면 골리앗, 파도를, 원수를 왜 두려워하리. 겸손해야 한다 그러나 내면에는 사람 앞에 물질 앞에 굽신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라.
걱정, 두려움 그 생각을 담고 있지 말아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걱정, 염려는 죄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대로 사명감으로 살아간다. 조금만 아파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의도는 내영을 깨우는 것이고 회복인 것이다. 매일 예배하고 주님 사랑하고 살면 고난 없다. 찬송하고 감사하기를 원한다. 쓸데없는 걱정하지마라. 두려움은 불신이다. 하나님의 손발을 묶는 것이고 나 자신의 기백도 사라지는 것이다. 두려워 하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못한다. 주저앉게 된다. 마귀를 무서워하지 말아라. 포기하지 말아라. 주님 믿고 도전하라. 감사합니다. 아멘
명령한다. 내 안의 뱀 빼내야 한다. 내 안의 두려움과 무서움을 느끼게 하는 사탄아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떠나갈지어다. 아멘. 주의 평안이 내 안을 덮어라. 나는 주님 때문에 평안하다.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
나 두려움 없네 아멘
송도 가나안교회 김의철 목사님 설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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