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병을 고치시다
1 그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는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 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하나님은 사람마다 보이지 않는 갈증과 아픔, 문제들을 다 주셨다. 다 가진사람 한사람도 없다. 어딘가에 숨겨진 어둠, 아픔들이 있다. 때로는 그것을 안고 살때가 있다. 그게 있어야 겸손하고 주님을 알아볼 수 있으니까.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불행, 위기는 주님을 보지않고 사는것이다. 사람, 권력, 물질에 의지하며 좋다고 살려는 것은 허상이고 그 어떤것도 우리 영혼을 지켜낼 수 없다. 주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삶만이 영원한 생명과 진정 평온을 누리며 살 수 있다.
때가 되면 나를 아프게 슬프게 해도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우리의 통곡, 아픔을 벗겨내신다. 우리가 세상을 가져 교만하여 주님없이 사는것 보다 숨겨진 아픔속에 주님안에 사는것이 훨씬 낫다. 교만, 방종한 우리들에게 작은 고통들을 가슴속에 넣으시는 것이다. 아파서, 슬퍼서, 어두워서 기도하다가 주님을 만나고 빛을 본다. 사탄의 가시라고 바울이 말하기도 했다. 우리들 삶속의 고통들 모두다 하나님이 주신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마귀가 줄때가 많다. 우울, 불안, 악한령을 몰아내면 우리 마음이 밝아지고 행복해지고 자신감이 생기고 생각이 살아나면서 질병들은 없어진다.
우리삶의 모자람, 가난, 고통, 질병을 주님께 가져가고 주님께 가는 통로가 되길 원한다. 행복할 때 교회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가슴이 무너질때 교회에 가서 살아나는 경우가 많다. 요한복음 5장에서 베데스타 연못가 38년된 병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못에 가끔씩 천사들이 내려와 물을 젓는다. 자주 있는일은 아니나 각종 병자들이 연못주위를 찾아온다. 맹인, 앉은뱅이, 희귀병 환자들이 찾아온다. 여기에 38년동안 그곳을 지키며 언제가 나도 고침받을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던 병자가 있었다. 이곳을 떠날 희망이 없기에 이곳에서 구걸하면서 38년을 살아온 병자다. 예수님이 그에게 다가간 것이다.
너무 빠른 은혜, 축복을 원하지 말자. 주님을 만나는것에 신앙의 모든것을 두자. 은혜받고 고침받아도 주님 만나지 않으면 또 세상에 나가버린다. 믿음이 다져져야 한다. 주님은 허락치 않으신다. 영적 단련 훈련, 믿음의 분량에 따라 외투를 갈아입히신다. 내안의 욕망, 욕심들을 버려내라. 하이애나처럼 자신을 갉아먹는 에고이즘을 버려라. 세포, 뼈마디마다 있기때문에 한번에 사라지기 쉽지않다. 은혜받고도 교만해서 마귀짓 하는이도 많다. 에고를 정복해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사탄의 욕망을 못이겨낸다.
내안에 하얀양과 시커먼 이리가 공존한다. 두마리 다 살릴수는 없다. 양이 살게하던지 이리가 살게하던지는 내가 누구에게 밥을 많이 주느냐에 달렸다. 믿음과 기도와 주님의 은혜아래 살겠다는 의지를 통해 양을 키워라. 누구나 한번의 전쟁은 치러야한다. 누구편에 설것인가 양인가? 이리인가?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내안에 두 마음이 있다라고 했다. 선과 살것인가 악과 살것인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리처럼 빼앗아 사는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살고 내안의 생수로 살아야한다. 회복이 되어야 한다. 가치가 달라져야 한다. 양에게 밥을 주기 위해 교회온 것이다. 회복 되어야한다. 마음, 가슴, 입이 열려야 한다. 은혜를 받으면 된다.
저수지 가뭄 비만 오면된다. 비를 내리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잡다한 고통, 문제들 은혜의 단비만 받으면 된다. 혼자 세상을 이겨낼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자기의 수고, 경쟁, 노력으로만 될 수 없다. 영의 사람으로 빚어질때 하나님은 그를 위한 성을 쌓아주신다. 때문에 세상을 얻으려 하지 말고 믿음을 키우려 애써야 한다.
이리가 꽉차있는 이는 미움,증오, 원수 삼고 산다. 성령의 은혜가 쏟아지기를 축원한다. 오늘 당장 부르짖으면 된다. 주님만나면 된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는 낫고 싶으니까 38년간이나 머물렀다. 주님이 그 사실을 몰라서 물었겠나 보편적으로 배고프다 먹고싶다 이런 생각들은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주님은 더 한단계 띄어넘는 갈증이 있어야 한다. 주님 만나고 싶습니다. 갈증이 끓어 올라야 한다. 그냥 생기지 않는다. 죽을만큼 힘들고 괴롭고 슬프고 살고싶은데 가슴찢어 놓을때 주님 나도 살고 싶습니다. 주님 나도 낫고 싶습니다. 간절함이 생긴다. 주님은 갈망하는 자를 찾으신다.
패자와 승자의 차이를 보면 승자는 갈망이 있고 패자는 갈망이 없다. 패자는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승자는 싸우고 교회가서 부르짖고 금식한다. 패자는 멍하니 있는다. 먹고 살만하니까 그저 그렇게 산다 의미없이 산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한다. 일어나야 한다. 작은 나의 모습에 안주하고 그저 맘이라도 편하고 살자 하면 희망이 없다. 시편에서 목동에 불과한 다윗을 왕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간절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것인가. 춤추며 살기를 그리고 영광 돌리며 살기를 바란다. 열강을 살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갈망이 들어와야 한다. 하나님 은혜가 답이다. 언제까지 노동의 노예로 살것인가. 하나님이 계획한 삶을 살라. 사탄에 짓밟히며 살지말라. 사람, 동네, 이웃을 살리고 열강을 살리는 사람이 되라. 그러기 위해서는 갈망이 들어와야 한다.

평범한 삶을 부정하라. 나도 일어날 수 있다. 나도 새로워 질 수 있다. 나도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나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갈망하라. 사탄에 묶인 우울증은 인생이 쓸쓸하고 배고프고 인생별거 아니다. 그리고 큰집이나 작은집에 사는 이도 누워있는 한평 공간밖에 없다. 다 죽으면 그뿐이다. 인생의 낙이 어딨나? 이런 염세주의로 빠지게 된다. 그런 삶은 지옥간다. 마귀가 주는 생각이다. 생각 바꿔야 인생이 바뀐다. 생각 바꿔야 미래가 바뀐다. 우리에게 고정된 미래는 없다 꿈꾸는 세계가 만들어진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다. 너 낫기를 원하느냐의 의미는 오래된 패배의식,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인자인지 그것에 묶인자인지 꿈을 꾸고 있는자 인지 묻는것이다. 우리의 목표지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사람과 비교하면 안된다.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봐라. 생각 바뀌지 않으면 인생 바뀌지 않는다. 쭈글거리는 삶 털어내라 주여나도 능력있는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일어나길 원합니다. 갈망이 와야한다.
일년기도 십년기도 포기한다. 얼마나 기다린것이냐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만나야 인생, 운명이 바뀐다. 크시고 위엄있으신 하나님을 아무나 만날 수 있겠나.
산을 곡괭이로 한달파면 백킬로 금이 있다면 모든이가 판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데 하나님을 얻으려고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 귀하신 하나님을 너무 쉽게 얻으려고 한다. 갈망이 있어야한다. 예수때문에 새로운 삶, 아름다운 삶을 살꺼야 간절히 원해야 한다. 내육신의 피로를 채우기 위해서 기도하지말고 예수님 만나려고 기도해라.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여종이 주인의 손길을 기다림보다 내가 주님을 기다립니다. 다윗의 고백중에
주님얻기위해서 내모든것을 버려라 갈망하라 아멘
-인천 송도 가나안교회 김의철 목사님 설교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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